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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h’s STORY 공주촌놈이 국민주택건설 공기업 대한주택공사 말단에서
사장으로의 승진,
그리고 고향발전을 위한 꿈을 펼쳐기 위하여...

어린 시절의 고난이 준 “나도 할 수 있다.”는 신념 본가와 외가, 그리고 처가가 모두 공주로 대부분 그랬듯이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창시절 차비를 아끼려 일주일에 한 번 집에 갈 때 읍내에서 신풍까지 반나절을 걸어서 갔고, 공부방이 없어 동네 사랑방에서 공부했던 기억이 새롭다.7남매의 엄한 스승이신 아버지와 어려운 집안 살림을 맡으신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신뢰는 누구보다도 존경의 대상이었다. 또한, 세종대왕이 밤을 새워 한글을 창제하다 잠이 든 집현전 학사에게 당신의 옷을 벗어 덮어 주었다는 글을 읽고 나서 부모님과 세종대왕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되었고, 걸어온 내 인생에 누구보다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책임감과 겸손의 리더십을 배운 군생활 문무를 겸비한 호국간성 R.O.T.C 장교로서 자긍심과 국방임무를 수행하며 부하를 사랑하고 책임지는 지휘자로서 책임감과 상하간의 신뢰와 겸손의 리더십이 몸에 밴 삶의 습관을 만들었다.

평생학습과 기업경영의 경험 중학교 기술선생을 하면서 생생한 교육현장을 체험하면서 평생 공부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고 믿고, 계속 공부하여 건축인 전문자격인 건축사, 기술사 국가자격을 취득하고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1998년 이후 부도난 ㈜한양의 법정관리인을 맡아서 경영혁신에 심혈을 기울이면서, 기업경영이 종사원, 사회, 국가에 대한 공적 책임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CEO 리더는 끓임 없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점을 배우게 되었다.

주공 사장이 되다. 긍정과 능동적 부지런함이 준 은총 신입사원 시절 촌놈인 나는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회사에 출근했다. 성실함은 나에게는 유일한 무기였다. 주어진 일이라면 망설이지 않았고, 뒤돌아볼 시간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배경도 줄도 없는 촌놈이 대한주택공사의 사장에 임명되던 날 비로소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것에 감사했다. 그러나 그것은 또 하나의 도전이었다. IMF로 인한한 부실을 해결하고 회사의 갱생이 필요하였기에 경영혁신에 팔을 걷어붙였다. 결단력과 포용이 없다면 결코 성공할 수 없는 자리가 사장이었다. 사기가 땅에 떨어진 직원들과 함께 최고의 공기업으로 주공을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나 스스로 나의 위치를 벗어던지며 덕의 정신을 실천해, 그 진심을 알아준 직원들의 보답으로 일구어낸 성과였다. 열정과 성실과 덕의 실천은 나 스스로 삶의 지표가 되었다.

내 고향 공주에 주공아파트를 짓다. 고향을 위한 헌신과 도전 주공에서는 대부분 본사 사업집행부서에 근무하였다. 주공 근무 30여 년 동안 고향발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주택난 해소를 위하여 신관동에서 처음으로 주공1단지를 짓기 시작하여 6단지까지, 옥룡동에 영구임대아파트를 건설하는데 직간접적으로 참여하였고, 특히 5, 6단지는 사장 재임 시절에 건설하였다. 또한, 퇴직 후의 입주 후 발생한 관리민원해소, 하자보수금지원, 옥룡 주공관리소의 금강사회복지시설 증축해결, 한적골택지개발, 월송대단지개발등에 많은 역할을 해왔다. 또 ㈜한양 사장 재직 시에 모교인 공주고의 정보관 앞 광장의 아스팔트 포장 공사를 해 주었다.고향발전을 위해 국회의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 정치에 도전하게 되었다. 나의 오늘은 고향 사람들의 음덕이 있어 가능하였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나였기에 자신이 있었다. 제17대 공주, 연기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그러나 소중한 것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좌절과 아픔을 톡톡히 겪었다. 그러나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삶의 마무리를 위하여 또 다른 도전을 해야만 했고, 그것만이 나를 아껴준 분들에 대한 마지막 선택이고 보답이라고 생각한다.